1.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소설

오늘 리뷰를 남기는 책은 클레어 키건베스트셀러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입니다. 퇴근 후나 휴일이면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종종 들르는데, 전부터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던 이 작품을 이번에야 구입해서 읽어보고 감상평을 남겨봅니다. 이 책은 얇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울림을 준다는 말이 많아서 기대하고 읽어보게 됐습니다. 영화로도 제작된 영화 원작소설이기도 한데요, 영화 오펜하이머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킬리언 머피가 제작과 주연을 맡은 영화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생각보다 짧은데?’ 솔직한 첫 인상입니다.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분량이 114쪽에 불과합니다. 책을 집어들면 몇 시간이면 다 읽겠다 싶을 정도로 얇습니다. 실제로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요. 하지만 책을 덮고 난 다음 머릿속에 남는 여운은 분량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이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클레어 키건은 이 얇은 책 안에 1980년대 아일랜드의 사회적 비극과 한 개인의 도덕적 갈등을 섬세하게 담아냈습니다. 책 제목처럼 ‘사소한 것들‘이 이야기의 중심이지만 그 사소함 속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달까요.

소설의 줄거리는 석탄과 땔감을 팔며 살아가는 주인공 빌 펄롱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평범한 가장으로, 아내와 다섯 딸과 함께 소박한 삶을 살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마을에 있는 수녀원으로 석탄을 배달하러 갔을 때 끔찍한 현실과 우연히 마주합니다. 폐쇄적인 수녀원에는 ’막달레나 세탁소‘라는 이름으로 소녀들을 학대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창고에 갇힌 한 소녀를 본 펄롱의 마음에 균열이 생기고, 이내 그는 그 아이를 구할 것인가 모른체 할 것인가 양심의 문제와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등장하는 수도원의 분위기는 음침하기 그지없다.

2.이처럼 사소한 것들 막달레나 세탁소 실화 배경 이야기

책의 말미에 실린 내용을 보니 ‘막달레나 세탁소‘라는 실화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었습니다. 저도 읽기 전에는 이 사건에 대해 잘 몰랐는데,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에서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했던 시설 이름이었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교회와 정부가 입을 맞추고는 미혼모나 ‘부정한‘ 여성들을 강제로 수용하고, 노동을 강요한 비극의 장소였습니다.

소설 속에서 수녀원의 묘사는 그 잔혹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행간에서 느껴지는 무거움으로 독자들에게 그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한 블로그 리뷰를 보니 ‘작가가 과장 없이 담담하게 쓰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섬뜩하다’고도 하는데 저 역시 이 말에 공감합니다.

주인공 펄로은 이 부조리를 마주하고도 처음에는 외면하려 합니다. 그의 아내는 가족의 평온을 지키려면 모른 척해야 한다며 현실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우리네 현실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일하다 보면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정의로운 사람이 될 지, 잠깐 묵인하고 편안한 회사생활을 할지 양심이 싸우는 상황이죠. 소설 속 펄롱의 고민은 현실 속 독자의 고민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에서 그는 갇혀 있던 아이를 수녀원에서 데리고 나오는 결정을 합니다. 권력자의 눈에 나면 앞으로 얼마나 고된 일상이 될 지 쉽게 상상이 되는 상황에서도 그런 양심적인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아일랜드 시골 풍경 - 돌담과 초가집이 있는 평화로운 마을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배경이 되는 아일랜드 시골 마을

3.간결함이 돋보이는 클레어 키건의 글

교보문고에서 이 책의 감상평을 찾아보니 많은 독자들이 그 간결한 문체에 대해 감탄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일부 독자는 마치 시를 보는 듯하다고도 하네요. 시에 조예가 깊지 않은 관계로 시적인 측면에서 평을 하기는 어렵지만 과장되지 않은 간결한 문장들, 담담한 문장들이 마치 수묵화에 담긴 여백의 미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 건 사실입니다. 어떤 장면이 나올 때 조금 더 설명을 붙여도 될 법하지만 과감히 생략해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작품입니다.

4.양심을 따르는 일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닌 용기다

소설의 주인공 펄롱이라는 인물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살아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미시즈 윌슨이라는 인물의 가정부였던 어머니는 어느날 임신을 했고 펄롱을 낳았습니다. 쫓겨날 법도 한데 미시즈 윌슨은 그런 펄롱을 거둬 집에서 지내도록 허락합니다. 덕분에 가난하지만 평온한 유년시절을 보낸 펄롱은 이타적인 마음을 가진 인물로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수녀원에서 마주한 진실 앞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개연성 있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도 삶을 살아오며 이제껏 많은 경험을 해왔을 겁니다. 펄롱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감사한 경험도 있고, 행복한 경험도 있고, 때론 사람에게 속는 일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경험들이 모여 삶의 기준이 만들어 지는 것이겠죠. 누군가의 작은 친절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선행이 또 다른 선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이 소설안에 담겨 있습니다.

낡은 공장 내부 -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오는 창문
소설 속 주인공 펄롱은 석탄을 판매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5.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제목처럼 작은 일상에서 시작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의 도덕성, 용기, 사회적 책임을 깊게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작가 클레어 키건은 불과 100여 쪽으로 이 질문을 담아냈고, 그 결과물이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와 오웰상 수상이라는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여러 감상평 중 ’이 책은 크리스마스마다 다시 읽고 싶은 이야기‘라고 쓴 블로그이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소설 속 배경이 한겨울 크리스마스 전후이기도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추운 겨울과 크리스마스라는 배경이 타인에 대한 마음 씀씀이를 더 따뜻하게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포스터 - 킬리언 머피 주연
킬리언 머피 주연의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포스터

6.킬리언 머피 주연 영화 원작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원제Small Things Like These
연도2024
장르드라마
국가미국
러닝타임98분
감독팀 밀란츠(Tim Mielants)
주연킬리언 머피(Cillian Murphy)

지난 해 2024년 겨울 동명의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했습니다. 인터넷에서 포스터를 봤었는데 그때는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라 어떤 줄거리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펜하이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킬리언 머피가 제작과 주연을 맡아 영화화 되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걸 보면 아마도 이 소설이 그에게 큰 영감을 준 듯합니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제74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소설을 인상깊에 읽었으니 영화도 곧 보도록 해야겠습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 펄롱의 내면적 갈등을 배우 킬리언 머피가 어떻게 연기했을지, 그리고 회색으로 점철되는 듯한 한겨울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이 스크린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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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메인 예고편 ⓒGREENNARAE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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